카테고리 보관물: 산업스파이

정보요원의 자살은 ‘보안통제권’의 포기이다!

이달 초부터 여·야간 정치권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로부터 구입한 해킹프로그램으로불법 해킹 여부를 놓고 각종 의혹과 함께 음모를 제기하는 등 밤낮없이 낮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이버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자살까지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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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가 언론매체에 그대로 공개되자마자 유서 내용에 대해서까지 또다시 음모론이 등장하는 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다지만, 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직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대테러, 대북공작 활동에 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자료를 삭제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그리고 유서의 행간을 살펴보면 “업무상 핵심적인 내용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한 동기가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처럼 유서에서 밝힌 국정원의 조직 위상과 관련된 핵심 업무는 “고도의 보안사항”이기 때문에 이는 결코 외부에 누설되거나 유출되어서는 안 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업무상 취급하던 중요한 보안사항을 지키기 위해서 자살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자살하기 전까지 조직 내·외로부터 전해오는 유·무형의 극심한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조직의 보호와 명예는 자살을 통해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요원의 자살은 스스로 ‘보안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이고, 결국 자살로 인해 남겨진 핵심 정보자료는 타인의 손에 이전되어 지키고자 했던 보안을 더 이상 지킬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보안’은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나 기밀을 누설하지 않으며, 외부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핵심정보를 알지도 못하고, 접근할 수도 없다면 지킬 것도 없는 것이 보안이다. 과거 군 복무시절이나 정부의 주요 기관 출입 시 입구에 잘 보이도록 부착한 “보안은 생명이다”라는 구호를 기억할 것이다. 보안의 ’주체’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핵심 업무에 대한 보안은 정보업무의 특성상 ‘일신전속성’이 있기 때문에 생명 없는 자는 보안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가 없다.

앞에서 ‘보안’을 ‘생명’과 동일시한 구호를 내세운 참 뜻은, ‘보안’은 하나 뿐인 ‘목숨’처럼 다루어야 하며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미이지, 평상시에 목숨까지 내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보요원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을 때 알고 있는 것을 인내하면서 굳게 지키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정보요원의 진정한 책무라는 뜻이다.

이번처럼 ‘자살’까지 하면서 조직과 개인의 명예와 보안을 지키고자 했던 충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이번과 같이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일을 거울삼아 정보기관 스스로도 업무 수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세밀한 검토와 함께, 혁신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법학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산업보안MBA 원장

정진홍  phdjjh@hanmail.net

고구려 최고의 스파이 도림스님

고구려 최고의 스파이 도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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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고구려

장수왕과 개로왕

백제의 수도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풍납토성의 옛모습

백제의 수도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풍납토성의 옛모습

장기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 바둑. 바둑은 옛날부터 전해 오는 놀이였다. 고구려에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도림스님이 있었다.

그는 007을 능가하는 스파이, 즉 첩자였다.

광개토대왕의 장남인 장수왕은 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연 뛰어난 왕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동아시아 4대 강국의 하나로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 5세기 고구려의 평화는 주변에 위협하는 세력이 없어 오래 지속될 듯 보였다.

그런데 고구려의 평화를 깬 세력은 의외로 백제였다. 백제는 광개토대왕에게 대항하다가 396년과 400년 싸움에서 크게 패배하여 고구려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제는 수십 년 동안 안으로 실력을 키우며 고구려에게 대항할 준비를 했다. 특히 개로왕은 조심스럽게 고구려 공격을 준비했다.

오랜 평화가 고구려를 나태하게 했음인지, 고구려 내부에는 장수왕과 귀족들간의 다툼이 있었다. 장수왕은 많은 귀족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고구려의 분열 조짐에 주목하고 있던 백제 개로왕은 469년 고구려 남부지방을 처음으로 공격해 보았다. 그런데 이때 고구려에서 반격이 없자, 개로왕은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볼 야심을 가졌다.

개로왕은 백제 혼자의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우선 고구려를 함께 공격해 줄 동맹국을 구하고자 적극적인 외교에 나섰다.

472년 백제는 북중국의 지배자인 북위에 사신을 보냈다.

“우리 백제는 오랫동안 고구려에게 억눌려 지냈다. 이제 우리 백제가 힘을 회복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한다. 고구려는 유연, 송과 힘을 합쳐 그대 나라를 협박하고 있다. 북위가 우리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공격하면 어떠하겠는가.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고구려도 물리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북위의 반응은 개로왕의 뜻과는 정반대였다.

“백제가 고구려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우리는 고구려와 사이 좋게 지내고 있으므로 고구려를 공격할 계획도 없다. 만약 고구려가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한다면 그때는 백제가 우리를 도와달라.”

북위는 백제의 요청을 거절한 후 도리어 고구려에게 사신을 보냈다.

“백제가 우리에게 두 나라가 함께 힘을 모아 고구려를 공격하자는 사신을 보내 왔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리러 왔다. 또한 우리는 백제가 우리에게 사신을 보내 왔으므로 그 대답으로 백제에 사신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자 장수왕은 백제가 고구려에게 배반할 뜻이 있음을 알았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대들은 백제로 갈 필요가 없다. 백제와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것이니 그대들은 곧장 위나라로 돌아가라.”

장수왕은 북위가 백제와 만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백제는 만리장성 이동의 고구려 권역 내의 나라라는 생각이었다. 북위는 고구려의 힘이 강하므로 고구려의 요구를 거절하고 백제와 만날 수가 없어 돌아가고 말았다. 북위는 고구려의 힘이 두려워 백제를 믿고 고구려의 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반면 고구려는 백제를 다시 공격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고구려군이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쌓은 아차산의 시루봉 군사 유적지

고구려군이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쌓은 아차산의 시루봉 군사 유적지폐타이어는 근래에 예비군 초소로 사용하면서 생긴 것이다.

스파이가 된 바둑왕 도림스님

장수왕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인 중원고구려비

장수왕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인 중원고구려비

장수왕은 백제를 크게 혼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차분히 준비를 했다. 장수왕은 먼저 백제에 보낼 첩자를 구했다. 장수왕이 첩자를 구한다고 하자 도림스님이 스스로 장수왕에게 나아갔다.

“어리석은 중이 아직 깨우침을 얻지 못하여 나라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면서도 아무런 이익을 나라에 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옵니다. 대왕께서 저를 써 주신다면 기필코 대왕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장수왕은 도림스님이 자진해서 찾아오니 매우 기뻐했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청하시니 고맙소이다. 스님께서는 백제에 잠입하여 그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해주시기 바라오. 그대만 믿겠소.”

도림스님은 백제로 비밀리에 보내졌다.

도림스님은 고구려에서 죄를 짓고 도망왔다고 백제 사람들을 속였다. 얼마 후, 도림스님은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궁궐에 나아가 고하였다.

“저는 어려서 바둑을 배워 자못 잘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왕님께 바둑의 참 재미를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개로왕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사람을 시켜 도림스님을 불러왔다.

도림스님은 뛰어난 바둑실력을 보였다. 좋은 바둑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한 개로왕은 도림스님과 수시로 바둑을 두었다. 개로왕의 바둑친구가 된 도림스님은 점차 많은 시간을 백제 궁궐에 머물게 되었다.

개로왕은 도림스님과 바둑을 두면서 그의 인격과 지식, 경험에 감탄했다. 도림스님은 개로왕이 자신을 믿어 준다는 확신이 들자 어느 날 조용히 말을 건넸다.

국력을 탕진한 개로왕

“대왕이시여, 제가 다른 나라 출신임에도 대왕께서는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직 한 가지 기술로 보답할 뿐 아무런 도움을 드린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대왕의 뜻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만난 지도 꽤 오래되었구려. 나는 그대의 인품을 믿고 있소. 나라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다면 나 또한 기쁘게 받아 줄 것이오.”

도림스님은 개로왕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다.

“대왕이 다스리시는 백제는 사방이 산과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의 나라들이 쉽게 공격할 생각을 못합니다. 더욱이 대왕이 잘 다스리시는 것에 감탄하여 주변의 나라들은 백제를 받들어 섬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대왕께서는 마땅히 높은 위세와 부유함을 드러내어 다른 국가의 존경을 받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제의 성곽과 궁실은 수리되지 아니하고, 선왕들의 시신은 볼품없는 무덤에 묻혀 있습니다. 또 백성들의 집들은 강물이 범람할 때 자주 침수되고 있으니 이는 강한 국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신다면 백제의 번성함이 드러나서 사방에서 백제를 부러워하고 받들고자 할 것입니다.”

개로왕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백제의 힘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은 주변의 나라들도 다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 궁궐이 낡아서 어쩐지 백제가 크고 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도림스님의 말은 개로왕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좋은 지적이오. 내가 멋진 궁궐을 지어서 백제 대왕의 위엄을 보여주겠소이다.”

개로왕은 도림스님의 말에 따라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백성들을 불러내어 멋지고 웅장한 궁궐을 짓도록 했다. 궁성은 흙을 다져서 바닥을 단단히 한 후 성벽을 쌓았고, 안에는 궁실과 누각을 비롯한 많은 화려한 건물들을 만들었다. 또 큰 돌을 캐내어 아버지 비류왕의 무덤을 다시 크게 만들었다. 또 한강변에 둑을 크게 쌓아 홍수를 막도록 했다.

이런 대규모 공사를 벌이다 보니 백제의 창고는 점점 비어 갔다. 백성을 위해 둑을 쌓은 것이 오히려 백성들에게 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에 끌려가 농사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군대에 무기와 군량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던 백제의 국력이 대규모 공사로 인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장수왕의 총공격

백제의 백성들은 점점 개로왕을 싫어하게 되었다. 언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를 만큼 백제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도림스님은 백제를 위태롭게 한 후 몰래 고구려로 도망왔다.

도림스님은 장수왕을 뵈었다.

“대왕이시여, 백제는 지금 백성들의 마음이 그 왕에게서 떠났고, 나라의 창고가 비어서 전쟁에 대비할 힘조차 없습니다. 이때가 백제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옵니다.”

장수왕은 도림스님의 보고를 받고 기뻐하여 즉시 장군들에게 군사를 내어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고구려의 총공격 소식에 개로왕은 너무 놀랐다. 그리고는 아들 문주를 불렀다.

“내가 어리석어서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나라를 망쳐놓았다. 백성들이 흩어지고 군사들도 약하니 지금 고구려 군대를 막기가 어렵다. 나는 마땅히 적과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어야겠지만, 너는 우선 난리를 피하였다가 다시 백제를 일으켜 주기 바란다.”

문주는 몇몇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도망을 갔다. 하지만 개로왕이 지키던 백제의 수도 한성은 고구려 군대의 공격 앞에 불과 7일 만에 함락되었다. 개로왕은 도망가다가 고구려군에게 잡히고 말았다. 개로왕은 서울과 구리 시 사이에 있는 아차산성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개로왕이 목숨을 잃은 아차산성

개로왕이 목숨을 잃은 아차산성

백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수도를 오늘날 서울의 풍납토성에서 충청남도 공주로 옮기게 되었다.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았을 때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상실했고, 장수왕은 고구려 남쪽 영토를 대전시 인근까지 넓혔다.

장수왕 시기 고구려의 남진

장수왕 시기 고구려의 남진

스파이가 많았던 삼국시대

고구려가 백제를 물리칠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도림스님이었다. 도림스님은 우리 역사에서도 가장 성공한 스파이의 한 명이다. 고구려는 외국과 잦은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외국의 사정을 잘 알아야 했다. 그래서 적국에 스파이를 두고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덕창이란 사람은 연개소문의 부하로 신라 김유신의 군대가 고구려를 공격해 온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보고했었다. 고죽리는 고구려가 645년 당나라와 싸울 때 당나라 진영에 숨어 들어가 당나라 군대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보고하던 스파이였다.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의 스파이 활동을 두려워하여 군대 내의 중요한 일들을 이합시라고 하는 암호문을 사용하여 사령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고구려만이 아니라 신라의 김유신도 첩자를 잘 이용했다. 조미곤은 백제의 좌평 임자의 집에 숨어 들어가 그를 통해 백제를 혼란스럽게 한 스파이였다.

007 같은 스파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최고의 스파이 도림스님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초판1쇄 2001., 3쇄 2007., 도서출판 창해)